내원사는 신라 무열왕 4년(657)에 원효대사가 지리산 동남쪽 30리에 형성된 성지에 덕산사를 세원다.
훗날 동방의 대보살로 불렸던 무염국사가 덕산사에 상주하여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도다가 조선조 광해군 1년(1609)에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절터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 스님이 절을 다시 세워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33-1호)과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이 있고,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 제233-2호)는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현지 안내판 참고]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라 무열왕 때인 657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961년에 내원사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맨 위의 지붕돌이 많이 부셔졌으며,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3층으로 된 지붕돌은 평평한 느낌이지만 모서리를 올려 경쾌함을 더하려 하였다. 4개의 주름 지붕돌과 전체적으로 기쭉해진 모습은 통일 신라의 늦은 시기인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여러장의 돌을 짜 맞춘 기단은 이른 시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사대 석탑의 변화를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장 안내판 참고]
불상 높이 102cm, 어깨너비 52.5cm의 비로자나불이다.
화강암의 불상은 고게 편 왼손 집게 손가락을 오른손 안에 넣은 지권인으 비로자나불이다.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지만 마멸이 심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원래 석남암사터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내원사로 옮겨 놓았다. 육계가 높고 나발도 크지만 둥근 편이다. 단아한 눈, 단정한 코, 작고 예쁜 입, 볼록한 뺨의 양감이 돋보인다. 상체는 넓은 편이나 낮아서 대좌 위에 앉아샤 안정되게 보이도록 되어있다.
얇은 법의가 양어깨와 전신을 두르고 있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난다. 촘촘한 옷 주름은 흐르는 듯 아름다워 8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배 모양으 광배는 오른 쪽 1/3 가량이 파손되었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는 연꽃봉우리의 상좌, 8각형의 종좌, 연꽃잎의 하좌로 구성되었다.
중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를 넣는 장치는 도난 되었다가 부산시립박물관에 보관되었다.사리단지의 표면에는 15줄 136자의 글이 새겨 있어 불상조성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766년(영태 2)에 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석남암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만든 시기가 확실한 드문 불상이다.
[현지 안내판 참고]
내가 방문한 날에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이 닫혀있고, 안내자도 없어 석불을 촬영할 수 없었다. 지인의 말로는 최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들었고, 우선 전각만 사진으로 남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석불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나 요즘은 사진 촬영을 금하는 경우가 많다.
내원사 비로전, 내원마을, 내원사계곡 사진도 한장씩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