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이 된 함양 남계서원

함양의 남계서원은 2019년 7월 10일자로 "서원, 한국의 성리학 교육기관"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함양 남계서원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선현들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남계서원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며 동방 5현으로 불리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1552년 개암 강익을 비롯한 지방 유생들이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으로 1566년에 명종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사액 서원이다. 출입문인 풍영루와 강당, 동재, 서재, 경판고(장판각),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급한 경사지에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두고 출입문까지 일직선상으로 배치하였는데, 이는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며, 이후 각 지역에 건립되는 서원은 대부분 이러한 배치 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남계서원은 정유재란(1597년) 때 소실되었으나 1612년 현재 자리에 다시 세웠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헐지 않고 존속한 서원 중 하나이다.

 

남계서원의 세계유산 지정서와 개요 설명

강학영역(강당, 동재, 서재)

서재

(Western Dormitory)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강당의 서쪽에 있어 ‘서재’라고 한다. 서재는 ‘보인재’라고도 하는데, 이는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글로서 벗을 사귀고 벗으로서 인을 돕는다. 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서재는 동재와 같은 2칸의 건물로 1칸은 온돌방이며 나머지 1칸은 ‘영매헌’이라고 이름 붙인 누마루로 되어 있다. 영매헌과 애련헌은 ‘연못을 파고 못 옆에 둑을 쌓아서 연을 구경하고 매화를 읊조릴 만하다’라는 뜻이다.

강당 (Lecture Hall)

강당은 ‘경’과 ‘논’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곳으로 명성당 이라고 하며, 중용의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된다.’라는 뜻이다.

강학영역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로 1559년에 완성되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방은 ‘거경’이라 하며 ‘경’에 ‘거’해서 ‘이’를 깊이 연구한다. 뜻이고, 동쪽 방은 ‘집의’라고 하며 ‘호연지기는 도와 짝이 되는 의를 축적해야 생기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동재

(Eastern Dormitory)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강당의 동쪽에 있어 ‘동재’라고 한다. 동재는 ‘양정재’라고도 하는데, 이는 역경에 나오는 ‘교육을 함으로써 사람을 바르게 기르는 것은 성인의 공덕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동재는 서재와 같은 2칸의 건물로 1칸은 온돌방이며 나머지 1칸은 ‘애련헌’이라고 이름 붙인 누마루로 되어 있다. 정여창 선생은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존돈이의 ‘애련실’에 영향을 받아 매화와 연꽃을 사랑하여 누 이름을 애련헌과 영매헌이라고 지었다.

제향영역(사당, 전사청)

사당 (Main Shrine Hall, 가운데 사진)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한 칸 반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주벽은 조선 5현의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을 모셨고, 서쪽은 1675년 숙종1에 동계 정온 선생을, 동쪽은 1689년 숙종 15에 남계서원 건립을 주도한 개암 강익 선생을 모셨다. 강익선생은 정온선생의 외삼촌이다.

전사청 (Store House, 오른쪽 사진)

전사청은 향사에 필요한 제기를 보관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전사청은 제향영역 내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제향영역 밖 독립된 영역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전사청이 건립되지 않은 사당은 고직사에서 제향을 준비하거나 외부에서 준비하기도 한다.

부속시설들(경판고, 묘정비, 풍영루)

경판고 (Library, 왼쪽 사진)

경판고는 ‘장판각’이라고도 하며, 서원에서 보유하는 책이나 판각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유생들을 교육한 ‘어정오경’등의 서적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건물을 지면에 붙이지 않고 4면을 모두 터놓아 공기의 유통이 자유롭게 하여 판각을 보관하기 쉽도록 하였다.

외부 벽체는 나무로 구성한 판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 역시 가운데 판벽이 있다.

묘정비(Myojeong Monument)

남계서원에 일두 정여창, 동계 정온, 개암 강익 선생 세분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고 있음에도 이를 찬양하는 송덕비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남계서원 건립 200여 년이 지난 1779년에 묘정비를 세우면서 글을 새겼다.

비문은 조선 후기 정조 때 문관 김종후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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