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삼천포, 독특한 풍경

revised at  2019-12-04, 2019-12-06, 2019-12-07  

삼천포를 정리해 보고 싶어서 2019년 12월 4일 저녁, 6일 저녁, 7일 아침, 3일을 찾았다. 겨울이라 복잡하지 않고, 걸리는 것도 적고, 하늘도 깨끗하다. 삼천포는 오래 된 항구도시 이지만 개발이 별로 안되어서 예전의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진주나 남해 방향에서 삼천포로 진입하면  창선과 삼천포를 잇는 연륙교가 거대한 모습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위로 최근에 개통한 바다케이블카가 분주히 오가고 있다.

반대편인 고성방면에서 삼천포로 진입하면 경계지역에 삼천포화력발전소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삼천포는 이렇듯 예전의 잔잔한 항구로서 깨끗하고 신선한 수산물의 고장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 내는 랜드마크들이 시선을 끄는 약간 특이한 느낌의 도시이기도 하다.

삼천포와 남해를 잇는 연륙교

이제는 삼천포의 상징이 되어버린 남해-삼천포 연륙교이다. 사천시 대방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연륙교인 대교는 2003년 4월 28일 개통됐다. 총 연장 3.4㎞, 너비 14.5m의 창선-삼천포 연륙교는 늑도교와 초양교, 삼천포대교 등 5개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연륙교가 개통됨에 따라 사천, 남해 뿐만 아니라 서부경남 지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짙은 안개 속에서 대교 위에서 보이는 삼천포항과 소용돌이 치는 사천만의 물살. 2019-11-28

안개가 짙게 깔린 겨울 새벽에 동쪽 고성 방향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지만 안개에 가려 어슴프레한 모습이다. 화력발전소의 탑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낸다. 2019-11-28

초양도의 아침풍경

초양도는 삼천포 앞바다라기 보다는 사천만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작은 섬이다. 삼천포대교가 이 초양도를 지나면서 이제는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한 섬이 되면서, 삼천포대교 휴게소도 생기고, 최근에는 사천바다케이블카가 이 초양도에서 돌아가도록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초양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대교가 개통되고, 초양도에 조성되는 유채꽃밭은 사진가들의 중요한 출사 포인트가 되었다. 노란 유채꽃과 대교의 붉은 페인트색이 어울리면서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초양도에는 돛단배 전망대를 비롯한 여러가지 시설을 설치하고 있고, 장미정원도 가꾸어 놓았다. 2018-11-28

대방 군영숲과 대방진 굴항

대방 군영숲

사천시 대방동 746번지 일원의 군영숲(일명 군인숲)은 고려시대 말에 우리나라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의 영이 있었던 곳이며, 임진왜란(1592~1598년)시 거북선을 숨겨두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던 인근의 대방진굴항에 상주하던 군인들의 훈련장과 휴식처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오래된 팽나무와 느티나무 등의 녹음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뛰어난 경관이 있어 사계절 시민들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곳이다.

대방진 굴항(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3호, 1983. 12. 23 지정)

이 굴항은 고려 시대 말에 남해안에 자주 침입했던 왜구를 막기 위해 설치한 군항 시설의 하나이다.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영의 소속으로서,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궁 이순신 장군이 수군 기지로 이용하였다 한다.

현재의 굴항은 조선 시대 순조 때 진주 병마절도사가 진주목 관하 73개 면의 백성을 동원하여 돌로 둑을 쌓아 만든 것으로, 1820년경에 완공하였다.

남해창선도의 적량첨사와 군사적 연락을 취하던 기지로 당시에는 300여 명의 수군과 전함 2척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다.

삼천포화력발전소

삼천포화력발전소(三千浦火力發電所)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에 위치한 화력발전소로, 한국남동발전에서 운영하고 있다. 주소지는 고성군에 속해 있는데 ‘삼천포화력’으로 불리는 것이 좀 특이하다. 아마도 이 발전소로 인한 직간접적인 영향이 삼천포 시민들에게 더 많이 미쳐서 일 것으로 추측된다. 간간이 들리는 뉴스에 의하면 발전소 건설에 당시 공유수면의 상당부분이 삼천포지역에 속한다고 하여 소송도 있고 했다. 아무튼 석탄화력발전소로 1983년에 1호기가 건설된 이래 1998년 6호기까지 건설되어 현재 발전 시설용량이 3,240MW 라고 한다.

한국남동발전(주)에서 소개하는 삼천포화력발전소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국내 최초 500MW급 대용량 석탄화력발전소로서 총 설비용량 3.240MW를 자랑하는 남부지역의 대규모 화력발전단지입니다. 환경보전 및 저원가 발전을 위해 저급탄을 활용한 친환경 연소 기술을 집중 개발중이며, 탈황.탈질설비 등 최첨단 환경설비를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석탄회의 생산적 재활용을 위한 정제공장을 국내 최초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 운영하는 등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환경경영대상을 수상하는 등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경영 구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초로 냉각수를 활용한 4.740㎾ 해양소수력을 개발하여 운전 중이며,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는 등 청정에너지 개발을 통해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한려수도 유람선

유람선 한려수도호는 선착순 운항되며오전 11시 30분과 오후 2시에 2회 이상 운행되고, 관광 소요시간은 1시간 50분이며 이용요금은 어른이 19,000어린이가 11,000원 13개월부터 유아가 9,000원의 금액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코스는 선착장-코섬-신수도-병풍바위-상족암-삼천포화력발전소-스님바위-코끼리바위-남일대해수욕장-씨앗섬-선착장 도착이다.

 

삼천포항과 용궁수산시장

삼천포항은 1966년 4월 16일 무역항으로 지정되어 남해안과 서해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서부 경남의 관문으로서 수출 광석류, 고령토 등을 처리하는 동시에 화력발전소 연료 수송지원항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1962∼1966년 사이에 물량장 복구공사 및 준설공사, 1967∼1971년 사이에 안벽복구·물양장 및 호안복구 등의 공사, 1972∼1976년 사이에 내항 준설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2009년 현재 주요 항만시설은 안벽이 1,837m, 방파제는 2,335m, 물양장이 3,051m, 잔교는 4기가 있다. 산빅접안능력은 9척으로 10만톤급 2척, 5만톤급 1척, 1만톤급 2척, 5천톤급 2척, 1천톤급 2척 등이다. 연간 하역능력은 1964만 6천톤이다. 현재 낙도 보조항로로 삼천포∼욕지 간 등이 개설되어 있다고 한다.
삼천포항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주로 해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다.

대규모 수산시장으로 새벽부터 문을 여는데, 새벽에 시장을 찾는다면 싱싱한 물고기들을 확보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경매장의 색다른 풍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풍차언덕에서 보는 삼천포 앞바다

멀리서 보면 색다른 모습의 언덕이 보인다. 꽤나 커다란 풍차를 언덕위에 세워놓았는데, 풍차에 올라보면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망창을 통해 삼천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한낮이 되었는데도 삼천포 앞바다는 눈이 시릴정도로 파란 색깔을 뽐내고 있다.

삼천포 노산공원

그 옛날, 삼천포에 가면 노산공원이 가장 핫한 관광지였다. 특히, 노산공원에서 삼천포 앞바다를 지긋이 내려다 보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옛날에도 인상적이였다.

지난 1973년 3월에 건립한 이순신 동상은 좌대 높이 약3.5m, 동상 높이 약2.5m 모두 약6m의 이순신상은 당시의 삼천포 어민협의회 박동진, 천용욱, 김수출씨 등 어민 14명과 김기홍, 이삼술, 박균용씨 등 10명이 협찬하여 건립된 동상이라고 한다.

그때는 삭막한 노산공원을 단장하고 구국일념의 거룩한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어민협의회 14명과 협찬자 10명이 사재를 들여 세운것으로 노산공원을 찾는 시민들과 어린이들에게 역사적인 산교육장 구실을 해온 귀한 동상이었다.

이번에 보니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여전히 준엄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새롭게 보이는 시설이 박재삼 시인 문학관과 그의 동상이 있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문인인 모양이다.  박재삼 문학관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안내문에는
“박재삼은 다른 어떤 시인 보다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리고 광복 무렵과 한국전쟁기간 전후 우리 겨레 대부분이 경험해야 했던 경제적 빈곤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일상적인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시를 지었다.
또한 그 나름의 인생관으로 삶의 괴로움을 극복하는 시를 꾸준히 써 왔기에 그의 작품 속에는 그만의 독특하고 깊은 시세계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15권의 시집과 10권의 수필집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관련 사진은 아래에 정리하였다. 클릭하면 크게 볼수도 있고, 다운로드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