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고견사 뒤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져 의상봉이라 한다.
우두산에 자리산 고견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7년(667년) 의상,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견사라는 이름은 원효 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견암, 견암사, 견암선사 라고도 불리어 졌다.
고견사는 해인사의 창건주 순응, 이정 스님과 중창주 희랑 대사가 머물다간 곳이며, 고운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는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밭 100결을 하사하고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에 수륙제를 지내게 한 원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공민왕 7년(서기 1358년) 지희 스님이 중수하였고, 1630년 설현, 금복, 종해 스님들이 중건하여 고견사라 개칭하였다. 다시 일제 강점기 때 주지 예운 스님이 대웅전과 칠성각을 중수하였으며,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88년 성법 스님과 재일교포 배익천 선생이 시주하여 대웅전과 종각을 중건하였고, 1995년 원각 스님이 나한전, 요사채, 약사전을 신축하였으며, 2006년 무영 스님이 대웅전닷집, 천성문, 금강문을 신축하였다.
고견사는 1988년 9월 10일 전통사찰로 등록되었으며, 대표적 문화유산으로는 고견사 동종(보물 제1700호), 고견사 석불(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과 조선 숙종대왕이 내린 강생원의 운영당 현판이 있다.[현장의 안내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