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와 서암정사

2020년 3월 20일 가끔씩 지나는 길에는 들리곤 하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들려보았다.

2020년 3월 20일 가끔씩 지나는 길에는 들리곤 하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들려보았다. 위키백과에는 벽송사와 서암정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지리산 북쪽의 칠선계곡 근처에 있다. 벽송사 소속 암자였다가 사찰로 승격한 서암정사는 바위 더미 위에 지어진 절로 벽송사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옛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에 벽송대사로 불리던 장군 출신의 승려 송지엄이 중창한 뒤 벽송사라고 불렀다. 한국 전쟁 때 지리산이 조선인민유격대의 근거지로 사용되면서 벽송사는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벽송사 건물은 이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본래 벽송사 자리보다 약간 아랫쪽에 새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벽송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에서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청허휴정(서산), 부휴선수, 송운유정(사명) …………

 

벽송사 3층석탑 – 보물 제474호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碧松)이 창건한 사찰이다. 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다. 벽송사의 창건연대가 1520년인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양식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2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사이에 높직하게 딴 돌을 끼워놓은 것이다.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한 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밑에는 수평으로 얇은 단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각 층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추녀가 얇고 반듯하며 마무리 부분에서 치켜오른 정도가 완만하다. 하지만 지붕돌 윗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치켜올림의 정도도 심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2층이 2단, 3층이 3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있다.

이 석탑은 조형예술이 발달한 신라석탑의 기본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며 짜임새 또한 정돈되어 있는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법당 앞에 탑을 두는 것과 달리 탑을 절 뒤쪽의 언덕 위에 세우고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벽송사 주차장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100m정도 가면 서암이 나타난다.

벽송사의 원응 주지스님이 1989년 이곳으로 옮겨온뒤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 :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계 모습), 광명운대(光明雲臺 :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암의 절경은 오밀조밀한 기암괴석에 온갖 기화요초로 정원을 만들어 생전에 볼수 있는 극락세계로 요즘들어 부쩍 탐방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위와 바위사이를 철판으로 길을 만들어 연결해서 다니고 있고 바위굴을만들어 스님들이 수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곳이다.

입구의 마애상은 바위에 나한을 양각해 놓은것으로 이 곳에 들어서면 저절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생겨지는 불교 예술의 극치이며 연중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곳이다.

서암,서암정사,함양군,경남
서암,서암정사,함양군,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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