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하신 장모는 새댁시절을 보낸 이곳 시목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요즘들어 부쩍 자주 말씀하신다. 대충 정리해 보면 이렇다. 지금은 진양호에 수몰된 내동면 내평리 쯤 되는 것 같은데, 안뜰마을에서 3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나셨는데, 면장을 지내신 부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귀하게 자라셨다는 것을 늘 강조하신다. 팔자가 사나와서 장인이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탄하시지만, 청상이 되어서도 1남 2녀의 자녀를 제대로 키우신 대단하신 분이시다.
시목마을에서 살림을 시작하신 장모는 큰집 옆에 새로 집을 짓고 분가를 하셨고, 나중에는 삼촌이 그 옆에 집을지어 분가를 해서 3형제가 나란히 담장을 끼고 사셨다고 한다. 처조부께서는 못미더운 3형제를 옆에 두고 아침 기상부터 논일, 밭일, 살림하는 것 까지 직접 챙기셨다고 한다. 밤이되면 아궁이에는 청솔가지를 잔뜩 쑤셔 넣고 밤새 타게 해 놓고는 또래의 처녀 총각 이웃이자 친지들이 좁은 방에 가득모여 화투놀이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인근에는 포수가 둘이 있었는데 장인은 명포수요 새터에 사는 집안사람인 우체국장은 헛포수라 했다하니 장인은 여러모로 재주가 많으셨던 모양이다. 당연히 마을 앞에 강이 있으니 통발에 그물질을 해서 수렵에도 능하셨다고 하는데 우리 집사람의 손재주로 봐서는 약간의 과장이 있지않나 싶다. 장인은 처조부의 논일과 밭일의 배정이나 보상체계 그리고 간섭에 불만이 많으셔서, 어떻게 해서라도 도회지로 나갈 요량으로 대구에 사시는 누님를 자주 찾아 가셨고, 돈도 열심히 모으셨다고 한다. 장인의 구두쇠 같은 절약에 살림을 해야하는 새댁은 몰래 쌀독의 쌀을 퍼내서 봇짐장수와 거래를 하다가 들켜서 혼이 나는 일도 많았다 한다. 귀하게 자란 새댁이 꾸미고, 바르고, 애기들 입히고 등등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다리건너 저 멀리 아지랭이 너머로 봇짐장수가 나타나면 새댁은 아무도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서 보자기에 담아 담장너머 어딘가에 숨겨두고는 시치미 떼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은근히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