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곶이 마을의 터줏대감인 강명식 할아버지는 진주시 문산이 고향으로 1957년 1월 살을 예는 어느 날, 하루 종일 완행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밤늦게 예구마을에 첫 발을 디뎌 놓는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와 맞선을 보기 위해, 색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양가의 승낙으로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오전에 식을 마치고, 오후에 산보를 나간 곳이 지금할아버지의 보금자리가 돼 버린 공곶이, 그러니까 그때로서는 신혼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12년 후, 1969년 4월 다시 거제도를 찾게 되고, 공곶이에 정착하게 된다.
결혼 후 힘들게 번 돈으로 전답 7천여m2와 임야 3만여m2를 사게 된다. 당시, 지주는 도시로 이사 갈 계획을 세우던 터였고, 할아버지한테는 기회였던 셈이다. 젊은 나이, 새벽별 보기와 달맞이는 일상사가 돼 버렸다. 하루 종일 양손에는 괭이와 삽이 떠날 수 없었고, 어깨에는 지게가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돈을 벌어 농장을 가꿔 보겠다는 희망으로 소득이 될 수 있는 작물이 뭔지 고민하면서 종려나무는 꽃꽂이용으로, 수선화는 꽃시장 판매로, 지금의 농장을 만들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농사짓고 있는 땅은 임야를 제외하고 3만 3천m2, 이땅은 새로운 꿈이요, 희망이다.
할아버지는 2000년 초부터 매년 수선화를 일운면에 기증해 오고 있다.
여행 마니아들로부터 인터넷 검색으로 봄의 여신 노란 꽃 수선화 피는 곳으로 알려진 공곶이, 노년의 할아버지는 이제 또 다른 꿈을 키워 가고 있다. 전국에 공곶이를 널리 알리고, 수선화 피는 아름다운 마을로 인식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