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 예담촌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과 높이 둘러친 오래된 돌담들 그리고 연륜만큼이나 다양한 담쟁이와 야생초와 야생화들…
그러나 이곳에는 그 연륜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겠지만 이미 알려진 이야기만 해도 우리들의 호기심을 들춰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진양하씨 원정공이 원정매를 심고 즐겼다는 이야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백의종군시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는 이야기, 조선 개국공신 이개공이 왕자의 난 이후 이곳에 터잡은 이야기, 여기에 조선의 마지막 지성이라는 면우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이야기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흔적과 함께 알려져 있다.
면우 곽종석 선생은 1846년 6월 24일에 단성면 사월리 초포동에서 태어나, 유학을 부흥시키고,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1919년에는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 평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전달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뒤 돌아가셨다.
1920년에는 제자와 유림들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이동서당을 건립하였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규모에 팔자모양의 팔작지붕을 얹었고,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을 얹었다.
1984년에는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가 세워지고, 1991년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사당을 건립하였다.
— 산청 이동서당 안내판 내용을 옮겼다.
유림독립운동의 발상지 및 유림대표 137인 중 대표자 면우 곽종석 선생의 출신지인 남사예담촌에 2013년에 건립하여 애국정신이 담긴 유물과 귀중한 사료들을 보관전시하여 독립운동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고 민족자존과 국가기상을 확립하는 대표적 시설이다.
전시실과 영상실, 수장고 및 사무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시실에는 파리장서 사건 당시 유림 대표를 맡았던 면우 곽종석, 김복한 선생과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심산 김창숙 등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 137명의 독립운동 활동사항과 독립 이후 훈·포장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